한 명의 동료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가끔 그녀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점심에 나무젓가락으로 컵라면을 먹을 때,
밖에서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를 담아 왔을 때,
인쇄하려고 에이포 뭉치를 만지작거리다
그녀가 뒤에 서있진 않을까 멈칫했습니다.
또한 종종 그녀를 놀렸습니다.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싶은 사무실에 들어서며
배에서 끌어올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칠 때,
만나는 이들의 희로애락에 일일이 반응할 때,
몸속에 인공지능 스피커가 있냐고 놀렸습니다.
그녀는 ‘기후위기 앞에 무엇이 더 중할까’ 생각했고
두 해 전에 청소년 기후행동〈1.5도씨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학교를 떠난 이들을 ‘학교밖청소년’이 아닌
‘자기주도청소년’이라 부르며〈배움공방〉을 꾸렸고
작년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궁금해 제주와 서울의 십 대들과
〈포스트 코로나 인류학〉이라는 것을 공부하기도 했지요.
지구와 생명을 끔찍하게 위하는 만큼
하나하나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해냈던
쫌 이상한 동료.
그녀는 삶디 열린책방의 책방지기입니다.
열여덟 살에 이곳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스물둘이 된 올해 떠납니다.
내일이 마지막 출근.
삶디는 ‘바라는 삶을 키워내는 힘을 기르는 곳’이라는데
그녀도 뱃속 어딘가에 그런 힘을 채웠을지 문득 궁금하네요.
“전국에 있는 봉우리 삼십 개를 오르겠다”라고 말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숨도 안 쉬고 읊는 모습을 보니
그녀 표현대로 퇴사보다 ‘빛나는 졸업’이 맞다 싶네요.
학교를 다니거나 안 다니거나
돈을 벌거나 못 벌거나
집을 떠나든 머무르든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시절.
십 대에서 이십 대로 넘어가는 이때를 살아낸 그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는 다시 새 동료를 기다립니다.
이십 대라는 오르막길 앞에 서있는 십 대,
오르막 어디쯤에서 숨 몰아쉬고 있는 이십 대들과
배우며 일하려 합니다.
또바기, 알지?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어.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 메리 톨마운틴의 詩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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