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삶디] 나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을걸

오늘은 제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유월, 비 갠 뒤 가시거리가 참 좋은 날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실에서 창밖을 한참 내다보고 있었어요. 쉬는 시간이었나 봐요.
저 멀리 있는 동네와 하늘을 보니 그것들의 색과 모양을 눈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때 담임 선생님이 곁에 와서 “오늘 가시거리가 정말 좋다.”라고 하셨고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덧붙여 말했습니다.
“가시거리는 사람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를 뜻해.”
선생님의 보조개가 함께 웃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가시거리’는 이 세상에서 그녀와 나만 아는 말처럼 느껴졌어요.
오늘 같이 맑은 날에는 이 네 글자가 절로 떠오릅니다.
그녀는 종종 우리들 앞에서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 알려주었던 곡은 ‘개똥벌레’였습니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로 시작하는 흥겹고 구슬픈 노래.
멜로디와 가사가 쉬워 우리는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습니다.
곧잘 해서인지 어느 날엔 칠판 빼곡히 가사를 4절까지 쓰시더군요.
“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 년을 흘렀네.”
‘터’라는 곡이었습니다.
아, ‘사계’도 배웠어요.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그리고 그녀는 내 일기 한 편 한 편에 정성 들여 답장을 썼습니다.
엄마에게 쉬이 듣지 못하는 칭찬을 받았고
친구 때문에 속상한 날엔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는 그녀를 통해 세상을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열 살에 인생의 가시거리가 훌쩍 길어진 셈입니다.
변창주, 나의 선생님. 그리고 내 마음속 좋은 어른.
4학년이었던 나는 40살이 되었습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고요.
지금은 벼리라는 이름표를 달고
노리 곁에 있습니다.
하루 반짝 만나기도 하고 몇 달, 몇 년을 만나기도 하죠.
스승이라기엔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부모라기엔 돌볼 수 있는 품이 좁디좁습니다.
헤매는 노리들의 시야를 조금이라도 넓히고 싶지만
능력 밖인 듯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요.

얼마 전 자랑했듯 다섯 명의 인턴을 진달래 필 적에 만났어요.
일 년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지요.
허나 그들 중 세 명은 가만히 이곳을 떠났습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일상다반사지만
끝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해 섭섭해요.

오늘처럼 햇빛 좋은 날에는 오래전 나의 선생님이 생각나고
엉거주춤하게 헤어진 노리들이 생각납니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01
삶디 인턴십 프로젝트
백일 동안 우리는
‘아니, 벌써’라는 노래가 귓전을 때린다.
백일 동안 다섯 인턴은 어찌 지냈을까.
노동은 기본, 목요일마다 공동학습을 했다는.
02
시각디자인방 얼떨결에

얼떨결에 이모티콘 완성!

노랑, 동동, 미니, 히로는 결국 만들었다.
카카오나 네이버에서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완성보다 완주에 대해 말하고 싶다.
03
살림공방 일상살림클래스
일상을 담고 살리는 가방이야
태블릿, 전공 책, 새로운 것을 담고 싶어서
삭삭삭 드르륵 배낭을 만들었고
자신에게 감격한 나머지 말. 잇. 못.
04
1.5도 모임 온라인 독서모임 1.5쪽씩
향모를 땋으며
혼자 읽기엔 엄두가 나지 않아
1.5쪽씩 천천히 꼭꼭 씹어서 읽기로 했대.
읽을 때는 반짝거렸고 읽고 나선 고마웠다고. 
05
모두의 창작
두 시간만에, 쨔잔
“평소 뭐뭐 해보고 싶었는데”라며
116명이 삶디 공방들을 다녀갔다.
가볍게 몰입하며 그들은 입꼬리를 올렸다.
06
책방 옆 인디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서
‘블해’는 남 일 같지 않아 괴로웠다고 했지만
세상 어딘가에 있을 수많은 ‘동아’를 위해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07
열린책방
잘 그리고 싶지 않은 그대에게
똑같이 그리면 잘 그린 거 아닌가.
‘도리’가 아니라고 격하게 도리질을 한다.
잘 그리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게 뭐지.
08삶디 마을의례
모내기 했던 날
09도시농부장터
6월의 보자기장
손 모내기를 앞두고 체조하고 노래했다.
다른 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
노리들은 멧돼지찰과 보리벼를 심었다.
매실, 파, 토마토, 감자, 양파, 디저트, 빵,
된장, 장아찌, 김치, 참기름, 수공예품,
비건과 기후행동 활동가들의 부스까지.
지난호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간〉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 ‘iamshiri’ 님이 답장을 보내셨어요.
“일상의 평범한 사물과 행위 속에서 삶을 성찰하고 의미를 나누는 잔잔한 만남이 더욱 감동적.”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바라보는 독자분들이 더욱 감동적. 답장 좋아. 😊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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