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광고가 흘러나옵니다.
“당신의 가치를 높여줄 주거 명작”
아파트가 집주인을 찾는 소리입니다.
번쩍거리는 예배당에 울려 퍼집니다.
“회개하고 구원받아 영생하라”
어떤 교회가 사람 불러들이는 소리입니다.
얼마 후면 거리에서 들을 수밖에 없겠죠.
“검증된 정직한 서민의 일꾼, 머시기입니다.”
무리의 대표로 뽑아달라 핏대를 세우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집보다 내 필요로 지은 집이 ‘명작’일 테고
만들어진 신이 예언한 내일보다 내가 만든 ‘오늘’이 가치 있고
만들어진 우두머리의 헛된 약속보다 우리의 ‘외침’이 낫지 않을까요.
처음엔 분명 같이 잘 살려고 만들었을 텐데.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거야.
그렇다면 속 편하게
모르는 척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등 돌리고 말까요.
아니요.
안돼요.
내가 사는 곳과
내가 믿는 신과
나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그러니까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처음 약속대로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
군침 흘리며 ‘돈, 명예, 권력’을 좇는지
뚫어져라 보아야 합니다.
아니라면 멈춰 세워야 하고요.
그래야 주인이죠.
열여덟 밤 자면
국회의원 뽑는 날이로군요.
열여덟 살부터, 드디어.
국회의원은,
허공에서 말로만 맴도는 ‘정의’를
사회의 약속인 ‘법’으로 만들어냅니다.
수많은 ‘엔번방’이 어리고 여린 이들을 짓이길 때
‘재발방지법’을 만들 수 있는, 그래야 하는 사람들이죠.
십팔 세의 정치참여권.
어렵게 얻어낸 당연한 권리입니다.
사 월 십오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