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는
[특별호] 생일상에 45쪽짜리 책을 올리며 🎂

[특별호] 생일상에 45쪽짜리 책을 올리며 🎂

고마워요, 덕분에 네 살 됐어요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삶디 개관 4주년을 맞아 특별하게 인사드립니다. 4년 전 오늘, ‘삶디’라는 마을이 문을 열었습니다.  배움의 기쁨으로 풍요로워지는 삶의 정원을 희망하며 말입니다.  그간 작은 씨앗을 품은 여러 노리들이 삶디에 뿌리를 내렸고,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잎이 돋아났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나의 지금을 찾았다.”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위로받았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오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걸었던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그들이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을지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서의 경험으로 각기 다르게  또 힘차게 줄기를 뻗어 올릴거라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손수 물건을 만들고,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요리도 하고, 땅을 만지며 농사를 짓는 움직임이  그들을 생기 있는 삶으로 이끌어주었을 테니까요. 노력의 결실을 서로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시공간에서  새로운 존재로의 탐험이 다양하게 펼쳐졌을 테니까요. 그렇게 정성으로 일궈온 무형의 자산이 든든하기에  불안과 두려움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
2020.11.05
[월간삶디] 초록이 다했다

[월간삶디] 초록이 다했다

시월의 초록 이야기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초록이 다했습니다.  초록은 노랑과 빨강, 빨강과 갈색, 갈색과 회색,   혹은 회색과 없음 그 사이로 사라지는 중입니다.  그동안 벼리들이 써둔 글을 들여다봤습니다.  비대면 생활을 엮느라 지나쳤던 글이었습니다.  카페 크리킨디의 ‘바질 토마토 에이드’ 이야기,  삶디에서 채종한 배추, 무 씨앗을 나눠 기르는 열한 명의 농사일기,  반딧불 빛을 닮은 포스터를 내걸었던 ‘광주광역시를 향한 1.5마디’ 캠페인 후기까지.   글도 사진도 유난히 초록스러워 궁금했습니다.  ‘우리의 일을 색으로 말한다면 초록 아닐까.’  ‘그런데 왜 이 계절에도 우리는 초록을 말하고 싶을까.’  답을 내기 전에 노리 ‘달복’이 쓴 에세이가 문득 떠오르네요.  그녀는 땀내 나고 따가운 여름을 싫어했지만 올해 여름은 기다려지고,  온갖 살아있는 것들을 만나 인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달복은 생명을 마주하며 나는 살아있고 우리는 함께 있다고 느끼고 싶었겠죠.  이번 호를 엮는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꼭 같습니다.   여름, 혹은 초록, 또는 생명을 기다리고  또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은   다른 존재와 이어져 내 목숨을 확인하고 싶은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존과 공존이 위태로운 시절이니까요.⋯
2020.10.31
[월간삶디] 비대면생태보고서2 《우리가 쓰는 도구들》

[월간삶디] 비대면생태보고서2 《우리가 쓰는 도구들》

만들거나 만나고 싶응께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먹을 것을 구하는 중입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날카로운 돌을 찾고 있습니다. 나는 20만 년 전 사람입니다. 먹을 것을 구하는 중입니다. 나갈 수 없어 핸드폰을 쥐고 배달 어플을 누릅니다. 나는 2020년에 살고 있습니다. 손안의 돌과 핸드폰이 겹쳐 보입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도구를 씁니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겠지요. ‘톱과 망치, 칼과 도마, 바늘과 실’ 삶디에 있는 ‘도구’들을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놀고 있어요. 먼지 앉을 지경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는 공방이 많습니다. 일부러 그리 지었습니다. ‘만들 수 있다면 살 수 있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전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만나면 안 된다’는 세상의 주문과 ‘만들며 살자’는 이곳의 주제가 쾅하고 부딪쳤습니다. 하지만 여덟 달을 보낸 지금은 말할 수 있습니다. 만나지 않고 만들어야 했고, 그럴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어렵고 두려워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어라, 혼자 하는 힘이 생기잖아.”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식당>은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만나 ‘떡볶이’를 만들었습니다. 재료를 다듬고, 씻고, 요리하고 먹고 치웠고 레시피만이 아닌, ‘부엌일’을 몸에 익혀 좋았다고⋯
2020.09.26
[월간삶디] 비대면생태보고서1 《방과 후 1열》

[월간삶디] 비대면생태보고서1 《방과 후 1열》

N개의 방과후 프로젝트의 고백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 앞에 서있는데.”  1992년 히트작, 드라마 <질투>의 OST 한 소절이 귓가에 맴돕니다.   화상회의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벼리(삶디 직원을 부르는 말)들은 하나같이 말했습니다.   “대체 어딜 보는지 모르겠어. 아는지 모르는지, 좋은지 싫은지 알아챌 수가 있어야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 노래가 생각났고요.   만나는 법이 바뀌고 있어요.  역병이 막 돌기 시작할 땐 아랫돌 빼서 윗돌 끼우면 될 줄 알았지만, 더 이상 아니고.   그래서 올해 삶디의 벼리들은 ‘일의 뼈대’라는 ‘벼리’의 본래 뜻처럼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중입니다.   하루짜리 수업부터 석 달 프로젝트까지 다시 틀을 짜고 있어요.   처음엔 신박한 온라인 도구를 찾고 익히는 데 정신이 없었죠.  하지만 비대면으로 만날수록 고민은 짙어졌고 회의는 숱하게 늘었어요.  그리고 맺음말은 늘 같았습니다.   “하아, 이게 맞을까.”   비대면 학습을 실험하며 일 년의 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변화를 말하지만, 끝끝내 변하지 않을 것들을 생각해봤어요.  우리는 배우고 만들고 도우며 살겠죠,  끝끝내 연결된 채로.  이번 6월부터 8월까지, 서른아홉⋯
2020.08.28
[월간삶디] 354일 동안 집을 지었습니다

[월간삶디] 354일 동안 집을 지었습니다

마음씨 고운 목수들이 모여서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이웃에 마음 좋은 목수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라도 달려와 뚝딱뚝딱 고쳐주는 솜씨 좋은 손으로 이것저것 살펴주면 좋겠다.  비 새는 지붕 틈도 찾아내고, 곰팡이 핀 벽도 말끔하게 손질하고,  찬바람 드는 벽 틈을 막아 걱정 없이 겨울도 나고,   봄이 와 외벽에 고운 색을 함께 칠해주는   만능 동네 목수가 가까이에 있다면 정말 좋겠다.”  몇 해 전 읽었던 기사 ‘솜씨 좋은 동네 목수와 함께 산다는 것’의 첫 문단입니다.  이곳, 삶디 지하 1층에는 <생활목공방>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보쳉’이라는 목수가 있지요.  목공방 한 귀퉁이에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동료들의 메시지가 빼곡한데  그것들 중 하나가 바로 저 글귀입니다.  ‘삶디 마을에 당신과 같은 동네 목수가 있어 정말 좋다’는 뜻이겠지요.  그는 오 년째 목공방에서  끌로 숟가락 깎고, 대패로 도마 밀고  톱과 망치로 책상도 만들고 있습니다.  혼자 쓰는 쪼그마한 것부터  두루 쓰는 큼지막한 물건까지,  누구나 만들어 쓸 수 있다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삶디 층층마다 그가 만들거나 고친 것들이 수두룩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집을⋯
2020.08.04
[월간삶디] 문제 많-은 농부들

[월간삶디] 문제 많-은 농부들

근디 우리가 농부여?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여기 두 명의 농부가 있습니다. 삶디 음식공방의 ‘필라’와 ‘라라’ 그들은 사 년째 마흔 평의 밭과  열 평의 논을 가꾸는 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식당>이라는 간판 달고 십 대 농부요리사들과 일 년짜리 프로젝트를 하면서요. 어디서 하냐면요.  이름도 찬란한 ‘황금동’에서 합니다. 광주 사람들이 너나없이 ‘시내’라 부르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자라는 채소와 곡식들은  온갖 멋쟁이 구경하고, 최신가요 들으면서 크지요.  우리가 노동요 부르며 엄지와 검지로 어린 벼를 잡고 심을 때   바로 옆 옷가게에선 손님들이 엄지와 검지로 티셔츠를 들어 올립니다. 안 어울리는데 묘하게 어울리는 풍경. 필라와 라라에게  그들의 일과 생각을 써달라 부탁하며 물었습니다.  이번 호 제목이 떠오르지 않기도 했고요. “둘은 어떤 농부야?” 답이 뜻밖입니다. “우리가 농부 맞나?”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던 필라가 말을 잇습니다. “십 대를 잘 만나기 위해  함께 삶의 태도와 몸을 바꾸면서  배우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어. 누군가는 목공, 누구는 음악으로 만난다면  우리는 ‘음식’을 가운데 두고 만나지. 자연스레 농사도 하고 있지만,  먹을 것으로 사람과 배움을 잇고⋯
2020.06.26
[월간삶디] 열여덟이 열여덟 밤을 자면

[월간삶디] 열여덟이 열여덟 밤을 자면

4월 15일입니다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라디오에서 광고가 흘러나옵니다. “당신의 가치를 높여줄 주거 명작” 아파트가 집주인을 찾는 소리입니다. 번쩍거리는 예배당에 울려 퍼집니다. “회개하고 구원받아 영생하라” 어떤 교회가 사람 불러들이는 소리입니다. 얼마 후면 거리에서 들을 수밖에 없겠죠. “검증된 정직한 서민의 일꾼, 머시기입니다.” 무리의 대표로 뽑아달라 핏대를 세우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집보다 내 필요로 지은 집이 ‘명작’일 테고 만들어진 신이 예언한 내일보다 내가 만든 ‘오늘’이 가치 있고 만들어진 우두머리의 헛된 약속보다 우리의 ‘외침’이 낫지 않을까요. 처음엔 분명 같이 잘 살려고 만들었을 텐데.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거야. 그렇다면 속 편하게 모르는 척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등 돌리고 말까요. 아니요. 안돼요. 내가 사는 곳과 내가 믿는 신과 나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그러니까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처음 약속대로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 군침 흘리며 ‘돈, 명예, 권력’을 좇는지 뚫어져라 보아야 합니다. 아니라면 멈춰 세워야 하고요. 그래야 주인이죠. 열여덟 밤 자면 국회의원 뽑는 날이로군요. 열여덟 살부터, 드디어. 국회의원은, 허공에서 말로만 맴도는 ‘정의’를 사회의 약속인 ‘법’으로⋯
2020.03.29
[월간삶디] 살아있습니다.

[월간삶디] 살아있습니다.

4월 15일입니다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라디오에서 광고가 흘러나옵니다. “당신의 가치를 높여줄 주거 명작” 아파트가 집주인을 찾는 소리입니다. 번쩍거리는 예배당에 울려 퍼집니다. “회개하고 구원받아 영생하라” 어떤 교회가 사람 불러들이는 소리입니다. 얼마 후면 거리에서 들을 수밖에 없겠죠. “검증된 정직한 서민의 일꾼, 머시기입니다.” 무리의 대표로 뽑아달라 핏대를 세우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집보다 내 필요로 지은 집이 ‘명작’일 테고 만들어진 신이 예언한 내일보다 내가 만든 ‘오늘’이 가치 있고 만들어진 우두머리의 헛된 약속보다 우리의 ‘외침’이 낫지 않을까요. 처음엔 분명 같이 잘 살려고 만들었을 텐데.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거야. 그렇다면 속 편하게 모르는 척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등 돌리고 말까요. 아니요. 안돼요. 내가 사는 곳과 내가 믿는 신과 나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그러니까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처음 약속대로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 군침 흘리며 ‘돈, 명예, 권력’을 좇는지 뚫어져라 보아야 합니다. 아니라면 멈춰 세워야 하고요. 그래야 주인이죠. 열여덟 밤 자면 국회의원 뽑는 날이로군요. 열여덟 살부터, 드디어. 국회의원은, 허공에서 말로만 맴도는 ‘정의’를 사회의 약속인 ‘법’으로⋯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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