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삶디] 초록이 다했다
시월의 초록 이야기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초록이 다했습니다. 초록은 노랑과 빨강, 빨강과 갈색, 갈색과 회색, 혹은 회색과 없음 그 사이로 사라지는 중입니다. 그동안 벼리들이 써둔 글을 들여다봤습니다. 비대면 생활을 엮느라 지나쳤던 글이었습니다. 카페 크리킨디의 ‘바질 토마토 에이드’ 이야기, 삶디에서 채종한 배추, 무 씨앗을 나눠 기르는 열한 명의 농사일기, 반딧불 빛을 닮은 포스터를 내걸었던 ‘광주광역시를 향한 1.5마디’ 캠페인 후기까지. 글도 사진도 유난히 초록스러워 궁금했습니다. ‘우리의 일을 색으로 말한다면 초록 아닐까.’ ‘그런데 왜 이 계절에도 우리는 초록을 말하고 싶을까.’ 답을 내기 전에 노리 ‘달복’이 쓴 에세이가 문득 떠오르네요. 그녀는 땀내 나고 따가운 여름을 싫어했지만 올해 여름은 기다려지고, 온갖 살아있는 것들을 만나 인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달복은 생명을 마주하며 나는 살아있고 우리는 함께 있다고 느끼고 싶었겠죠. 이번 호를 엮는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꼭 같습니다. 여름, 혹은 초록, 또는 생명을 기다리고 또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은 다른 존재와 이어져 내 목숨을 확인하고 싶은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존과 공존이 위태로운 시절이니까요.⋯
2020.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