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봄이 언니’는 금요일 저녁마다 목공방에 왔다.
작은 고양이 ‘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며
나무로 장난감을 만들었다. 쥐잡기 놀잇감이었다.
끝난 뒤 “할 줄 아는 게 하나 더 생겨 기분이 좋다”라고 했다.
‘박력분’은 수요일 저녁마다 빵을 배웠다.
시작할 때 차를 마시고 글을 읽었는데 잔잔해서 좋았고
밀 이야기를 낭독할 때, 겨울 땅 속 밀알이 지금의 나 같다고 했다.
“맨날 똑같은 하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라고 했다.
5·18 즈음, 달마다 독립영화 트는 ‘책방옆인디’에서 영화 <김군>을 올렸다.
관객 한 분이 한 번쯤은 5월에 광주에 있고 싶었다며
“이름 없이 싸웠던 시민군들의 밤이 편안했으면 좋겠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이는 “민주주의를 더 넓은 시각으로 보게 됐다”라고 했다.
<미얀마 평화손 만들기>에서 스물네 명은 마흔여덟 개의 손을 만들었다.
버스터미널과 5·18 민주화 광장에서 시민들은 그것을 들어 올렸다.
하나에 꼬박 네 시간이 걸리기에 누군가 끝내지 못하면 다른 이가 완성했다.
자리를 준비했던 벼리 ‘또니’는 이를 “또 다른 연대였다”라고 정의했다.
청소년운영위원회 ‘삶디씨’는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를 읽고 있다.
다들 하니까 혹은 재미있어서 썼던 말글이 약한 자를 어찌 괴롭히는지,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말하고 써야 하는지 공부하는 중이다.
혐오 표현인 줄 알면서 친구 따라 ‘급식충’을 입에 올렸던 날들을 후회했다.
가만 보자. 왠지 비슷한데.
그래, 그들은 작고 약한 것들을 위해 시간을 보냈구나.
무언가를 만들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결국 자신을 도운 셈이다.
어떤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돌고 돌아 나를 나아지게 한 것이다.
흠,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눈곱만큼 손톱만큼 병아리 눈물만큼 알 것 같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