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삶디] 꽃은 지겹지 않아요
오월도 그래요 이 편지가 잘 안보이시나요? 꽃은 지겹지 않아요. 봄마다 그 자리에서 그 모양 그 색으로 피어도 꽃은 지겹지 않아요. 이른 봄에 피는 꽃, 늦봄까지 지지 않는 꽃 , 손톱만 한 꽃, 주먹만 한 꽃, 하얗고 심심한 꽃, 붉고 시끄러운 꽃. 고개 돌리다 보는 꽃, 하늘에 눈길을 두어야 보이는 꽃. 이름도 향내도 다 다르니 꽃은 지겹지 않아요. 봄까치꽃, 제비꽃, 할미꽃, 매발톱꽃, 금낭화, 수수꽃다리, 은방울꽃, 꽃마리, 딸기꽃, 조팝나무꽃, 민들레, 애기똥풀. 마음만 먹으면 지천으로 볼 수 있는 꽃은 지겹지 않아요. 오월도 그래요. 꽃 같은 이들이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오월은 지겹지 않아요. 박기현, 김완봉, 박금희, 박창권, 양창근, 전영진, 박현숙, 황호걸, 방광범, 이성귀, 전재수, 김평용, 김명숙, 김부열, 문재학, 박성용, 안종필, 김기운. 사십 년 전 봄, 광주 곳곳에서 스러진 어린 꽃들의 이름을 꾹꾹 눌러씁니다. 태어나 스물을 다 채우지 못한 어린 꽃들. 광주의 ‘오월’은 아무리 보고 듣고 말해도 지겹지 않아요. 죽어 썩어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발효 중인 이야기니까. 시간을 초월해 살아있는 이들이 우리에게 뭣이 중한지 물으니까. 마음만⋯
2020.04.24